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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화. 템퍼 매트리스 가격은 왜 매장마다 다를까?
    매트리스 개발기 2019. 2. 12. 00:23


    [똑같은 템퍼 매트리스인데 가격은 천차만별?]

    NASA가 만들었다는 템퍼 매트리스를 사기 위해 백화점에 간 적이 있는데 아주 이상한 경험을 했다.


    “원래 가격은 좀 비싸요. 근데 고객님은 좀 더 싸게 맞춰드릴 수 있어요.”


    나한테는 더 싸게 팔겠다고? 당장이라도 지갑을 열 뻔했지만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다른 지점에서 더 싸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템퍼 매트리스는 ○○지점이 제일 싸다는 그럴듯한 말로 손님을 꾀어내고 있었다.


    (템퍼 매트리스 가격을 검색하면 나오는 글들. 똑같은 템퍼 매트리스인데 지점마다 가격이 다르다.)


    똑같은 템퍼 매트리스라도 지점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는 게 이상했다. 도대체 왜? 템퍼 매트리스의 진짜 가격은 얼마인걸까… 워낙 고가의 제품이라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사고 싶은 마음에 백화점, 수입 매트리스 전문점 등 가리지 않고 돌아다녔는데 그럴수록 찜찜함만 커져 갔다.


    (매트리스를 개발하게 되면서 다시 만난 템퍼 매트리스. 개발자가 되어 사용해보니 사뭇 느낌이 달랐다.)


    알아본 곳 중에 제일 싼 곳에서 템퍼 매트리스를 사긴 했지만 왠지 더 싸게 살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탐탁지 않았다. 하지만 기계적으로 템퍼 매트리스 위에 누워볼 힘도, 더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지점을 알아볼 힘도 없었다. 호갱의 운명이겠거니... 받아들이기로 했다.


    [런던에서 직접 경험한 침대 매트리스 시장의 미래]

    (매일 아침 미세먼지 없는 공원을 달리는 것만으로도 런던 생활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템퍼 매트리스와 얽힌 호갱의 추억(?)이 희미해질 즈음, 런던으로 이주를 했다. 막 런던에 도착했을 당시 나는 텅 빈 집에 가구를 하나씩 들여놓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다. 영국인 친구들로부터 이것 저것 추천 받을 수 있었는데 가구는 Ikea, 가전은 Arogs, 잡화는 Amazon, 식재료는 Waitrose, 매트리스는… Casper!



    (Casper 쇼룸 모습. 온라인으로 출발한 매트리스 스타트업이 이제는 세계 각지에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할 만큼 성장했다.)


    영국에는 템퍼 외에 많은 메모리폼 매트리스 브랜드가 있었다. 그중에서 캐스퍼를 선택한 이유는 호기심이었다. 캐스퍼는 온라인으로만 주문을 받고 있었는데 무슨 자신감일까 싶었다. 좋은 침대인지 아닌지는 직접 누워봐야 알 수 있는 거 아닌가? 100일 이내에 환불이 가능하다길래 부담 없이 구매했다. 하지만 사용해보니 너무 말랑말랑했고 푹 꺼지는 듯한 느낌 때문에 나와 잘 맞지 않았다. 그래서 배송비까지 부담해가며 겨우 반품했고 다른 메모리폼 매트리스를 찾기 시작했다.


    (체험해 본 매트리스 중에 저가 메모리폼 매트리스도 있었다. 역시 싼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eve를 알게 됐다. 병아리가 연상되는 노란색의 브랜드 컬러 때문인지 기존 가구 회사 특유의 묵직함이 아닌 젊은 브랜드 느낌이 들었다. eve 매트리스는 잘 정리된 웹사이트에서 아주 간편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템퍼 매트리스를 구매할 때처럼 몇 시간 동안 백화점과 가구점을 돌아다니는 수고를 겪지 않아도 됐고 영업사원의 틀에 박힌 설명을 듣지 않아도 됐다.


    (마음에 쏙 들었던 eve 공식 홈페이지. 노란색의 포인트 컬러가 눈에 띈다.)


    eve의 메모리폼 매트리스를 직접 사용해 보니 이제껏 통증 때문에 옆으로 누워자던 내가 바로 누워자도 허리가 아프지 않았다. 완벽하게 꼭 맞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스프링 매트리스를 사용할 때와는 수면의 질이 아예 달랐다. 첫날 자고 일어나서 오랜만에 안 깨고 쭉 잠든 게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두어 번 메모리폼 매트리스를 사용하고 나니 다시는 스프링 매트리스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사용감은 캐스퍼보다 나았지만 별 고민 없이 만든 것처럼 보이는 원단 디자인은 그닥...)


    문득 템퍼 매트리스를 사기 위해 가구점을 돌아다닐 때가 떠올랐다. ‘진짜’ 가격이 얼마인지도 모른채 여기서 사는 게 제일 싸다는 말에 쫓기듯이 살 수 밖에 없었다. 고생 끝에 고른 템퍼 매트리스가 집에 도착했을 때도 반갑고 기쁘기 보다는 더 싸게 살 수 있었으려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었다.


    가구점이 아닌 온라인에서 매트리스를 구매할 수 있다면?

    스프링 매트리스가 아닌 메모리폼 매트리스를 사용한다면?


    내가 느꼈던 불편함, 어쩌면 다른 누군가도 느꼈을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어느 순간부터 저런 물음표들이 졸졸 나를 쫓아다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내린 결정은 단순하고 무모했다. 우리가 한국의 매트리스 시장을 바꿔보자! 였으니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는 게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저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어쩌다’ 매트리스 개발자가 되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내가 메모리폼 매트리스 개발자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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