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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라돈 매트리스 사태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매트리스 개발기 2019. 2. 12. 20:51
라돈 매트리스 사태로 떠들썩했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출근 준비를 하며 습관적으로 틀어 놓은 아침 뉴스에서도, 유튜브 추천 동영상에서도, 다들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은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단톡방에서도 라돈 매트리스 얘기는 빠지지 않았다.
(라돈 매트리스 사태가 터진지 9개월이 지난 지금, 이제는 라돈으로부터 안전한걸까?)
“언젠가 터질 줄 알았다.”
라돈 매트리스 사태를 보며 들었던 생각이다. 어떻게 나는 라돈 매트리스 사태를 예감할 수 있었을까?
(라돈 검출로 수거된 침대 매트리스ㅣ출처: 구글)
나도 믿고 쓸 수 있는 매트리스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는 생각으로 인터넷으로 전국의 침대 공장을 샅샅이 뒤져 리스트를 만든 뒤 하나씩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매트리스 개발 초기. 밤까지 새 가면서 무언가에 몰두한건 대학교 졸업 이후로 처음이었다.)
직접 공장을 찾아다니며 침대 매트리스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동안 마케팅에 완전 속았다는 생각에 배신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우리의 기준에 맞는 메모리폼 매트리스를 만들 수 있는 공장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막막함이 밀려왔다. 배신감과 막막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한국 침대 공장의 관행들...
(이메일이나 전화만으로는 공장의 상황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택한 방법은 직접 방문하기.)
1. 세상에 천연 라텍스 매트리스는 없다
매트리스를 만들기 전까지는 몰랐다. 세상에 100% 천연 라텍스 매트리스는 없다는 사실을. 고무나무 껍질에 흠집을 내면 유백색의 액체가 나오는데 이걸 라텍스라고 부른다. 액체 상태인 라텍스가 침대 매트리스가 되기 위해서는 단단히 굳어져야 하는데 이때 경화제가 필수로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소비자는 이런 사실을 알 수가 없다.
(고무나무에서 라텍스를 채취하는 모습. 출처 구글)
화학 제품을 사용했다고 해서 무조건 해로운 게 아니다. 의자에도, 책상에도, 우리가 일상을 보내면서 살을 맞대는 거의 모든 제품에 화학 제품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 왜 업계는 이런 얘기는 쏙 빼고 천연 라텍스만 강조하는 걸까? ‘천연’이라는 단어가 주는 깨끗하고 건강한 이미지가 마치 제품 그 자체인 것처럼 포장하기 위해서다.
(100% 천연 라텍스는 어디에…?)
2. 원가 절감에는 폐기물이 딱이죠, 폐기물로 만든 재생 매트리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폐기물로 만든 재생 매트리스였다. 버려진 산업용 스폰지들을 모아서 커다란 믹서기에 갈아낸다. 그리고 그 스폰지 조각을 틀에 넣어 공업용 본드로 접착시키면? 산업용 폐기물이 매트리스 재료로 재탄생한다.
(충격적이었던 재생 매트리스의 제조 방식.|출처: 구글)
산업용 스폰지와 공업용 본드에서는 어떤 물질이 흘러 나올까? 내가, 내 아이가 쓰는 매트리스라고 해도 같은 방식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3. 산업용 스폰지의 화려한 변신
폐기물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공장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산업용 스폰지를 붙여서 메모리폼 매트리스를 판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업용 스폰지는 노래방 방음벽에 쓰이기도 하고, 주방용 수세미에 쓰이기도 하고, 사무실 의자에 들어가는 내장재로 쓰이기도 한다. 다른 용도로는 훌륭할지 몰라도 침대 매트리스의 재료로 사용하기에는 사용감과 내구성이 좋을 수 없다.
(노래방 방음벽에 쓰이는 스폰지가 침대 매트리스로…?|출처: 구글)
공장을 돌아다니면 돌아다닐수록 공장 리스트에 빨간 줄만 늘어났다. 메모리폼 매트리스를 만들어줄 공장이 없어서 난관을 겪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이럴 때 꼭 구세주가 등장하던데...
4. made in Italy, 알고 보니 made in China?
(막장 드라마급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었던 침대 업계.| 출처: 구글)
또 다른 공장에서는 아주 재밌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made in China를 감쪽같이 made in Italy로 둔갑시키는 방법이었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이태리에서 작은 창고를 하나 빌린 다음 중국에서 매트리스를 수입한다. 그리고 다시 이태리에서 한국으로 수출하는 거다. 이렇게 하면 중국산 매트리스를 이태리산 매트리스라고 부를 수 있게 된다. 물류비가 많이 들기는 해도 ‘made in Italy’라는 라벨만 있으면 소비자는 비싼 값을 지불하기 때문에 마진이 남는다는 거다. 세상에는 정말 창의적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이렇게 또 공장 리스트에 빨간 줄이 그어졌다. 100% 안전한 재료를 사용한, 완벽한 사용감의 메모리폼 매트리스를 만들고 싶은데 우리가 너무 이상적인 걸까?
(제품에 대한 높은 기준 때문에 쉽지 않았던 슬라운드 매트리스 개발. 매일 야근을 했는데 그때마다 서브웨이는 빠지질 않았다.)
적당히 타협할줄도 알아야 하는 걸까 고민하던 중에 우연히 방문한 대리점 사장님을 통해 어떤 엔지니어 분을 소개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외국에서 오래 일하다 온 기술자 한 명 소개해줄게요. 고집도 세고 까칠한 사람인데 잘 해봐요. 내가 봤을 때 당신들 원하는 거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그 사람밖에 없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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